
부활
w. 수저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그것은 그의 지론이자, 그의 세계였다.
그의 성은 고고한 산,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그의 성정에 맞게 그의 성은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으며, 주변에는 흐드러지는 장미가 만발해있었다. 붉은 장미, 흰 장미, 푸른 장미. 어떤 질서가 있지 않았지만, 흔히 말하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곳이었다. 달이 저무는 새벽이면 성은 눈이 서린 것처럼 빛났다. 이슬을 머금은 장미들이 푸른 달빛을 맞고 우아하게 피어났다. 그런 아름다움이 만발하는 곳에 그가 살았다.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그가, 바로 그곳에 살았다.
몇몇의 인간들은 그 성을 보고 황홀함에 빠져 이 곳에 들어오기도 했다. 대부분 두려워하면서도, 잘 정돈된 정원과 향기로운 꽃밭, 그리고 알 수 없게 들리는 음악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그런 인간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스스로 들어온 가엾은 제물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그의 집에는 맞지 않은 손님들만 가득했다.
그는 심미주의자였으면서도 한편으론 비관론자였다. 세상엔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이 많으나,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형편없이 가치가 떨어지는 것들뿐이었다. 이렇게 부조리한 세상이 또 있을까? 그는 몇 백 년 동안 퇴색한 세상을 마주했다. 날이 갈수록 아름다운 것을 찾는 건 어려워졌다. 이미 세상의 모든 미를 모았다고 판단했을 때, 그는 성을 지었다. 완벽한 자신의 세계를. 그리고 자신이 모든 생각이 이루어질 장소를 만들었다.
이곳에 오는 이들의 대부분은 죽임을 당했지만, 아닌 경우도 있었다. 옥석을 다루듯, 그는 사람의 가치를 판단했다. 자신의 성에 어울리는지, 아닌지. 그는 판단하고, 가치 있는 사람들을 두었다. 그렇게 두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완벽한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팬텀은 그런 그들의 생각까지 아름답다고 하진 못했지만, 존중은 해주었다. 그들을 성 밖으로 안내했고, 그들은 뒤돌아보지 않은 채, 다시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오로지 단 한사람만 제외하고.
가끔 팬텀은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이 고른 자들은 왜, 하나같이 세상을 갈망했을까. 자신이 만든 세상이 더 완벽한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궁금한 것들이었다. 추한 것들이 즐비하고, 악마 같은 것들이 날 뛴다. 그런 세계를 담고 싶을까. 그는 조소했다. 그리고 다른 세상들을 보았다. 버러지 같은 것들. 걸고 있는 십자가에 기도를 올렸다. 오늘도, 이 세계를 축복하시옵소서. 오늘도 당신 곁에, 새로운 신자를 보내오니 부디 당신의 뜻으로 아름답게 해주시길. 아멘.
청소가 끝나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도 자신의 성은 아름다웠다. 남아있는 시간은, 자신이 자랑하는 아름다움을 눈에 담고 싶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은 붉은 장미를 선물할까. 가위를 들고 장미를 잘라냈다. 한아름 자신의 품에 아름다운 것들을 품고 그는 움직였다.
성 안은 더 눈이 부셨다. 샹드리에는 진짜 다이아로 아름답게 출렁였고, 벽에는 금빛과 은빛이 섞인 아름다운 물결이 그려져 있었다. 우아하게 올라간 계단은, 파도가 치듯 잔잔한 곡선을 이루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꽃잎이 떨어졌다. 그마저도 원래 그랬던 것처럼 계단에 흩어졌다. 발자국처럼 남은 흔적들은 새삼 그가 얼마나 미에 미쳐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가 다다른 곳은 가장 왼쪽에 있는 방이었다. 보통 집주인의 방인 곳이었다. 여기선,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린 답이었다. 문을 열자, 그동안 다른 꽃들이 있었는지, 꽃 향이 훅 퍼져 나왔다. 시든 꽃들을 빼고 그는 품에 가져온 꽃들을 꽂았다. 소리 없는 움직임에도 안에 있던 남자가 눈을 떴다. 남자의 몸은 이불로 가려졌지만 앙상해보였고, 얼굴은 핏기가 없었다. 퀭한 눈으로 팬텀을 보자 팬텀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반면 남자는 인상을 찡그렸다. 누가 본다면, 저런 사람을 아름답다고? 라며 반문할 상이었다.
남자의 눈은 쌀쌀맞았지만, 팬텀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다시 치장했다. 며칠 사이에 져버린 꽃은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모든 꽃을 싱싱한 장미로 바꾸었다. 한 가득이던 꽃은 어느덧 한 송이만 남았다. 그 한 송이를 팬텀은 직접,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장미를 거부했다.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침대에 누었다. 어딜 봐도 무례했지만 팬텀은 웃으며 꽃잎을 죄다 따더니 그가 누워있는 침대에 뿌렸다. 유치한 장난에 남자는 몸을 옆으로 돌렸다. 돌린 몸 사이로, 찢어진 날개가 보였다. 한때 흰 깃털이 위풍당당하게 있었을 날개는, 지금은 볼품없이 겨우, 뼈대만 있는 정도였다. 앙상한 날개에 팬텀은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아파?”
“당연히, 아프지.”
“그러겠지. 그래도 좀만 버티면 완전히 바뀔 텐데.”
“차라리 잘라.”
남자는 거침없이 자르라고 말했다. 담담한 말투에 오히려 팬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런 야만적인 짓을? 역시 변화는 천천히 줘야 더 아름다운 것이야.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한다고.”
“내 날개를 떨어뜨리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고, 그 손으로 기도를 올리고, 내 이름을 부르짖는 것만큼?”
“그럼. 그 정도의 노력은 있어야하지 않겠어?”
남자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더는 말도 섞기 싫어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등허리 전체가 아팠다. 아니, 아픈 건 타락하기 때문일까. 거의 인간처럼 느껴지는 몸에 이를 악물었다. 성자라고만 들었는데, 이런 미친놈일 거라는 생각을 못했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년인지, 몇 달인지, 아님 고작 몇 시간인지도 모르지. 루미너스는 팬텀을 짜증에 섞인 얼굴로 보았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을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사람이길 바란다니. 그것도 아름다운 사람이길 바란다니. 자신을 잡으며 한다는 말이 그거였다. 너는 여기가 어울려. 그러니, 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 말뿐이었다. 자신을 언제 봤는지 모르지만, 자신을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말도 했다. 세례식 때 본건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기억은 그닥 나지 않았다. 이 역시 인간이 되는 반증인 것 같았다. 분명, 천상에서는 다 기억났을 텐데. 천상에서의 기억도 희미해지는 기분이었다. 나중엔 자신이 천사였다는 사실도 잊어버릴 게 뻔했다. 그러면 이 미쳤지만 대단한 성자의 말처럼 되겠지. 젠장. 이제는 험한 말도 저절로 나왔다.
상념에 젖어있던 루미너스를 끌어내린 건, 통증이었다. 이곳에 온 뒤로 결코 익숙해지지 않은 고통이었다. 등 뒤로 언제 왔는지 팬텀이 어느새 날개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제물을 바쳐 피가 묻은 손은 어느 때보다 죄가 많았다. 그 원죄가 직접적으로 몸에 닿아, 참을 수 없는 몸부림을 치게 만들었다.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아 이를 악물었다. 팬텀은 더 느긋하게 날개를 어루만졌다. 성자라는 이유로, 자신을 거부할 수도 없는 천사를 여기까지 끌어내렸다. 이제 완벽하게, 내려온다면, 완벽한 자신의 미로 완성시킬 수 있다. 그야말로 박제가 된 이데아. 팬텀은 자신의 손으로 완성시키기 위해 그를 어루만졌다. 어루만지면 만질수록 날개가 줄어들었다. 날개라고 부를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았을 때, 루미너스는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지옥이, 눈앞에 있었다. 뜨겁게, 원죄가 자신 안에 끓었다. 그 끓는 기름에 자신이 담겼다. 팬텀은 조용히 주기도문을 외웠다. 뜨문뜨문 들리는 소리는, 신처럼 다정했다.
얼마 뒤, 그는 완벽하게 다시 태어났다. 원죄를 품고, 아무것도 모르는 눈으로. 그렇게 인간인 이클립스가 깨어났다. 팬텀은 이클립스의 눈에 입을 맞추었다. 망각에 젖은 눈은 팬텀을 올려보았다. 팬텀은 망각한 어린 양에게 축복을 내렸다. 이 성의 안주인이 될 사람에게. 엄숙하고, 사랑스럽게. 비로소 완성이었다. 자신의 완벽한 세계는.
“아름다운 것에는, 아름다운 사람을 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