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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비안

아름다운 사람에겐 아름다운 것을.

그것은 팬텀의 신조였고, 루미너스는 팬텀의 신조를 알고 있었다. 팬텀의 신조는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루미너스가 팬텀에게 부담을 느끼도록 이끌었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는 어떻게 감히 아름다움을 판단하는가. 어쩌면 인류가 철학을 만든 이래로 지속해서 고민했을 그 ‘아름다움’의 기준을 섣불리 정하고 판단하는 행위에 루미너스는 껄끄러움을 느끼곤 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자신이 정한 아름다움이 타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 때문에 사진을 보고 연락을 줬다며 자꾸만 연락하는 팬텀이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샌님일 뿐이야

그것만 알아줘

 

 

루미너스는 반짝거리는 휴대폰의 문자 알림을 바라보았다. 이렇듯 팬텀은 지속적으로 루미너스에게 연락을 하곤 했다. 불과 몇 분 전에 받은 문자를 제외하고도 화면에는 이미 구애를 하는 듯한 문자들로 가득했다. 혹시 시간 있어? 샌님 이번 사진 조금 아쉽더라. 내가 이번에 찍은 거 봐주면 안 돼?

연락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몇 번을 해도 더럽게 안 듣지. 한숨을 쉬며 휴대전화의 화면을 껐다. 모른 척 지나가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 하는 법이었다. 휴대전화를 코트 주머니에 욱여넣으며 고개를 들자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루미너스는 그가 이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는 사진작가이고, 자신은 모델이며, 그는 자신을 좋아한다. 이 사실 3개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팬텀은 어떻게든 자신의 입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하며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싶어 한 것이었다. 그러나 루미너스는 거절했다. 알면서도 모른 체 할 수 밖에 없었다. 널리 알려진 팬텀의 신조만큼이나 유명한 팬텀과는 달리 루미너스 본인은 무명이었다. 괜히 카더라 기사들로 연예계를 꼬투리 잡는 기사들에게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이건 팬텀을 위한 것이기도 했으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팬텀의 스튜디오에 개인적으로 설 일은 없으리라. 팬텀의 연락을 받을 때마다 그렇게 속으로 되뇌곤 했다.

 

 

분명 그랬는데.

 

 

“춥진 않아?”

 

 

세팅할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줘.

조명이 하나둘 켜지고 반사판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샌님이 허락해 줄진 몰랐는데. 매번 문자를 보내도 모른 척 답도 안 해주고, 알면서도 무시하길래 샌님이 아주 얼음공주님인 줄만 알았지. 그래도 생일이 좋네. 샌님이 사진 찍어달라는 말도 하고…….

 

 

“……한 번만 찍게 해주면 더 연락하지 않겠다는 말은 잊은 거 아니지?”

 

“문자는 안 하겠다고 했지.”

 

연락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는걸? 팬텀의 말에 루미너스는 입술을 삐죽였다. 팬텀이 순순히 포기할 놈이 아니긴 했다. 이러니까 내가 너 피하는 거야. 난 샌님이 매번 피하다 마니까 이러는데? 그건 네가…….

 

“일단은 여기로 와봐.”

 

샌님도 얼른 끝내고 싶어 하는 거 같으니까, 얼른 하자. 아쉬움이 묻어있는 목소리였다.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스튜디오의 무대로 루미너스를 이끈 팬텀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잠깐만. 조명 다시 맞춰야겠다. 샌님 피부랑 머리카락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하얗게 반사되는데? 원, 이렇게 맞추기 애매해서야… 아냐, 샌님은 가만히 있어. 내가 해야지.

중앙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루미너스를 보며 팬텀이 턱을 긁었다. 또다시 한참을 돌아다니던 팬텀은 카메라를 세팅하며 루미너스를 마주 보았다. 사진은 내가 찍을 테니까, 샌님은 끌리는 대로 자세 취해줘. 말했듯 귀찮을 정도로 연락은 더 이상 안 할게… 사진은 샌님만 가지는 거야.

 

“이제 찍을게.”

 

팬텀은 긴장한 얼굴로 카메라를 만졌다.

 

 

 

번쩍, 플래쉬 라이트가 터졌다. 순식간에 시야가 새하얗게 부셨다. 루미너스는 터지는 빛을 따라 조금씩 자세를 바꿨다. 자신의 몸짓 하나하나에 카메라의 렌즈가 따라왔다.

 

괜히 긴장되는 분위기였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렇게 커다란 무대에 선 것은 처음이었으며 진지한 팬텀의 얼굴은 자신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명에서 나온 빛이 반사광과 함께 루미너스의 피부를 하얗게 비추었다. 조명 때문인지 열이 올랐다.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 분명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렌즈의 셔터가 다시 닫혔다가 열렸다. 렌즈의 끝에는 여전히 루미너스가 있었다. 루미너스는 그런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며 다시 자세를 바꿨다. 이번에는 입을 조금 벌린 채 손가락을 입가에 올리고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카메라의 렌즈가 긴장하며 따라왔다. 팬텀의 사인이 떨어졌다. 팬텀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루미너스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피사체의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렌즈를 맞추고, 초점을 조율하며, 셔터가 내려가는 그 순간까지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켜야 했다. 숨을 쉬면서 생기는 미세한 움직임조차 방해되기 때문에 숨도 멈춰야 했다. 정말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오로지 피사체에만 받쳐야 했다. 렌즈를 루미너스를 향해 고정한 팬텀의 손가락이 조율 대를 돌렸다. 너는 나를 좋아한다. 팬텀의 근육들이 긴장했다. 그리고 너는 지금 나에게 너의 모든 것을 주고 있다. 셔터 위로 팬텀의 손가락이 올라갔다. 모든 순간이 루미너스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팬텀이 루미너스를 바라보았다. 루미너스도 팬텀을 바라보았다. 셔터가 닫혔다가 열렸다. 하얗게 번지는 빛 속에서 팬텀이 셔터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발코니 문을 열자 차가운 겨울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오래 있으면 안 되겠다, 싶으면서도, 당장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예전에 잠시 시도했던 담배 따위가 괜히 그리웠다.

이게 뭐라고 한동안 팬텀의 부탁을 피해 다녔나 싶었다. 이렇게 금방 끝나는데. 루미너스는 난간에 기댄 채 팬텀이 건네줬던 종이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조금 더 크게 뽑아주고 싶었는데, 그럼 구겨질 거 같아서. 팬텀이 했던 말처럼 손바닥을 겨우 가리는 정도의 크기였다. 이 사진은 샌님만 갖고 있는 거야. 나한테도 없어. 말을 마친 뒤 팬텀은 기껏 준비한 생일선물을 직접 건네줄 틈도 없이 사진 한 장을 건넨 뒤 어디론가 가버렸었다.

 

아름다운 사람에겐 아름다운 것을, 이었나. 모델의 포인트를 가장 잘 포착하는 팬텀의 신조였다. 그 신조로 유명해진 팬텀이니 건네준 사진은 보지 않아도 정말 잘 찍었으리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포인트를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팬텀이 찍어준 사진을, 어쩌면 공부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루미너스는 사진을 펼쳐볼 용기가 서지 않았다.

 

왜? 사진 한 장이 뭐라고.

사진 플래시는 수십 번 터졌지만 받은 사진은 딱 한 장이었다. 수십 장의 사진이 떠 있는 모니터 앞에서 팬텀은 고심한 얼굴로 여러 번 마우스를 딸칵거렸다. 그렇게 뽑은 사진이 뭐라고 용기까지 필요로 하며 이러고 있을까. 손바닥 하나를 간신히 가리는 사진 한 장이었다. 용기까지 운운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루미너스는 사진을 보려고 할 때마다 상기된 표정으로 사진을 건네주던 팬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가지려는 것도 아니고, 단지 한 번 찍을 기회를 얻고 싶다고 며칠 내내 연락하고 자신이 허락하기를 기다렸었다. 루미너스가 가장 아름답다는 극찬을 아끼지도 않았었다. 일하면서 다른 나름의 아름다운 사람들이야 많이 봤을 텐데.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올라왔다. 사진을 들고 있는 손가락은 빨개지기 시작했었다.

루미너스는 손바닥 위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은 의외로 스튜디오에서 부산스럽게 찍은 것이 아니라, 루미너스가 팬텀을 기다리며 창가에 머리를 기댔을 때 팬텀이 찍은 것이었다. 찍은 줄도 몰랐던 사진이었다. 이래서 사진을 한참이나 고민한 것이었나. 창문 밖에서 내려온 부드러운 빛이 루미너스의 속눈썹에 걸려있었다. 루미너스는 급하게 사진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사진을 찍을 때처럼 손가락이 저렸다. 눈가가 시큰거렸다.

 

아름다운 사람에겐 아름다운 것을. 팬텀의 말이 루미너스의 입 안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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