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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당신을 위한 작은 선물

w. 하담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적혀있지 않은 수상한 편지는 한 문장만을 품고 있었다. 그 녀석이 내뱉을 만한 대사를 손 떨림 하나 없이 작성한 것을 보아하니 비슷한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차라리 검은 마법사가 두 명이라는 사실이 더 달가울 것이다.

 

글씨에서 편지지의 미세한 마력을 감지한 루미너스의 눈동자에 흥미가 일렁였다. 보통 모험가들을 부르는 편지의 경우 텔레포트의 기능을 함께 동봉하여 발송된다. 그러나 이 편지의 경우 오히려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편지지에 마력을 주입하면 발동되는 텔레포트. 동료들은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 때문에 언젠간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 했었고, 난 그 말을 귀 기울여 들었어야 했다.

 

 

 

저릿하게 울리는 등을 털어내며 일어나 보니 주변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엘리니아의 향긋한 공기는 온데간데없이 잘 보존된 오래된 나무의 향기가 났다. 고전적인 양식의 건물 내부는 마치 대저택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편지와 이어진 목적지가 이곳이라면 자신은 어째서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섬세하게 조각된 예술품이 장식된 복도는 으스스하다기보다 묘한 기시감을 풍기고 있었다. 예전에 아리안트의 부호를 설득하러 프리드와 동행했을 당시의 저택 복도? 최근 연합 일로 이곳저곳을 떠돌며 방문한 곳? 아니 그보단 좀 더 최근의,

 

“ 이제 슬슬 네 이름이 듣고 싶은걸 ”

 

목소리의 주인공이 일부러 발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는 내가 아는 사람을 닮아 있었다.

 

“ 네 놈이 왜 여기 있지? ”

 

 

 

“ 그러니까 너는 이 저택에 들어온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존재에 불과하다? ”

 

“ 그렇다니까? 똑같은 내용을 여러 번 말하게 하는 것도 능력이야 샌님. ”

 

“ 잠깐, 그 외형을 바꿀 순 없나? 계속 보고 있으니…. ”

 

한 대 칠 것 같아서. 어둠 속에 가려진 희미한 기척에 예민해진 감각이 이를 드러낸다. 저도 모르게 오브에 밀어 넣었던 마력을 거둬들이며 눈앞의 그를 다시 살펴보았다. 다른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제 손과 마력이 반응할 정도로 똑같은 재수 없는 외관이었다. 밤에 활동하는 주제에 눈에 띄는 색을 몸에 두르던 팬텀과 달리 눈앞의 그는 짙은 색이었다. 시들기 시작하는 장미의 붉은빛, 빛조차 헤어나오지 못할 칠흑. 그러나 허튼짓을 한다면 당장에 무기를 꺼내 들 것 같은 자세나 혼테일 가죽보다 두꺼울 웃는 낯짝은 소름 돋을 정도로 똑같아서 좀처럼 경계를 풀기 어려웠다.

 

의미 없는 신경전이 계속될 무렵, 그가 딱딱했던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 나는 당신이 아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라니까? 샌님 때문에 이 외형이 된 것뿐이야. ”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또다시 의식을 잃었고 낯선 바닥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 자식의 역할로 인해 나는 환상과 비슷한 것을 보고 있다는 상황이 된다. 내가 서 있는 공간이 크리스탈 가든이라는 것,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그 녀석이라는 점, 모두를 설명해줄 순 없겠지만 그렇다.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팬텀은 이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대화를 이어가다가도 정답에 가까운 대답을 내놓지 않으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 안녕 샌님 좋은 아침이네. 그래. 책에 실려도 손색이 없을 대화가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데? ”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전부.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팬텀은 메이플 월드의 자유를 대변하듯이 언제나 어디서든 자유롭게 하늘과 땅을 누볐다. 그 행동에 조금의 억압과 통제는 없었고 팬텀 또한 선을 지켜가며 자유를 즐겼다. 그런 사람이 정해진 대본에 따라 움직일 리가 있나. 누군가가 지켜보는 듯한 기척에 팽팽해져 있던 감각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 …지금 이 상황 전부. ”

 

“ 샌님은 이런 틀에 박힌 대화 좋아하잖아? ”

 

“ 이런 식의 대화는 좋아하지 않아. ”

 

조금의 움직임도 없는 웃는 얼굴이 이 정도로 미운 날은 없었는데. 결국, 나는 이 관계에서 한 걸음 물러난다.

 

“ 다음엔 홍차보다 차 종류를 추천하지. ”

 

“ …. ”

 

아. 이것도 정답이 아닌가. 계속되는 침묵에 등줄기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어찌할 방도가 보이지 않아 몰래 간식을 훔쳐먹은 어린아이처럼 시선을 내리고 주먹 쥔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나는 여기서 사랑하는 너의 얼굴은 보지 못하고 거짓된 네 모습만 봐야 하는가. 목 끝까지 차오른 마음이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적어도 이 감정을 처음 듣는 건 네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감정은 서투르다. 받고 자란 애정은 그 종류가 달랐기에 감정을 다루는 법을 모른다. 이런 나에 비해 너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즐길 줄 아는 너야말로 빛의 아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단독 행동을 하는 네가 새로웠다. 나는 죽어버리면 곤란한 존재였기에 항상 다른 사람들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를 키워준 사람들의 손을 놓자마자 동료들의 손을 잡았다. 이런 나기에 무리를 벗어나 혼자 행동하는 네가 당황스러웠고 또 부러워 윽박질렀을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도 이 감정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알 수 없다. 너에 대한 질투로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일 수도 있고, 너의 눈부심이 부러운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의 너는 환상이니까 작은 욕심을 부려 내가 원하는 대답을 입에 담아본다.

 

 

“ 좋아한다. ”

 

 

 

또다시 의식을 잃고 익숙한 바닥에서 눈을 떴다. 익숙한 바닥? 연결된 마력의 흐름을 찾아 무기의 위치를 찾는 것은 순식간이었지만, 바닥의 주인이 말을 거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 나도 좋아해 샌님. ”

 

“ 잠깐, 너, 네가 그걸 어떻게…. ”

 

“ 글쎄, 생일이라고 누군가 엄청난 선물을 준 게 아닐까. ”

 

환상 속에서 보았던 미소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미소였다. 발갛게 물든 너의 귀 끝이 눈에 들어왔다. 너는 그 제멋대로인 대답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네가 어떤 대답을 하던 나는 평소와 같이 너와 의견이 부딪치고 싸우고 결국 주먹을 들고 말 것이다. 그렇게라도 관계를 이어나가지 않으면 나는 또다시 저택의 문을 두드려 내가 원하는 것만을 보는 겁쟁이가 되어버릴 테니까.

 

그러니까, 이 감정에 마침표를 찍어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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